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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히브리인은 하비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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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2019-11-16

16. 히브리인은 하비루였다(?)

  기원전 2000년대의 문서에 많이 등장하는 일단의 무리들 가운데 하비루(Habiru)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소아시아, 메소포타미아, 시리아, 팔레스타인, 이집트 등 고대 근동의 여러 지역에서 시민권이 없이 떠돌아 다니는 사회계층을 말한다. 즉 사회의 외곽에서 정처없이 유리방랑하는 “유랑민” 또는 “외국인”이었다.
  하비루들의 특징은 때때로 게릴라 부대로 조직화되어 상인들과 민가를 공격해서 재산을 약탈하기도 하고, 국가의 용병으로 고용되거나 공공사업의 노예로 부역에 종사하기도 했다. 특히 하비루들은 이집트의 공공사업에 많이 동원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노예로 있은 것은 아니다. 요셉이 이집트의 국무총리라는 고위직에 올랐듯이 이들 중에서도 어떤 이들은 국가의 중요직에 오르기도 했다.
  한편 하비루들의 존재는 긍정적이기 보다는 부정적이었다는 것이 고대 문서들을 통해서 밝혀지고 있다.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주기적으로 정착민들을 괴롭히고 재산상의 손해를 입혔다는 것은 국가의 통치자들에게는 골치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집트 18왕조의 바로인 아멘호테프 4세 치하의 수도였던 아마르나(Amarna)에서 발굴된 1,400여개의 문서는 이집트와 팔레스타인 도시국가들 간에 주고 받았던 통치자들의 외교문서이다. 이 외교문서에서 이집트의 바로는 하비루들이 사회질서를 어지럽히고 평화를 깨뜨리니까 그들을 척결해야 한다면서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그만큼 고대 근동세계에서 하비루라는 일단의 무리들은 모든 이들에게 괴로움과 불편을 가져다 주는 존재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하비루”라는 말과 구약성서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지칭하는 히브리(Hebrew)라는 말은 어원적으로 상당히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성서학자들에 의해 제기되어 왔다. 물론 단정할 수는 없으나 여러 정황을 보면 상호 연관성은 충분하다고 하겠다. 히브리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반유목민적인 유랑하는 삶이 하비루들의 삶의 패턴과 상당히 닮았다는 데서 알 수 있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가나안의 원주민들 사이에서는 “거류민”으로 이해되었다.
  아브라함은 그의 가족과 가축을 이끌고 목초지를 찾아 유랑하다가 헤브론 근처의 마므레에 천막을 쳤다. 그의 아들 이삭과 손자 야곱도 이러한 삶을 살았다. 이들은 도시에 정착하지 않았고, 어느 특정한 지역에 정착해서 땅을 소유하거나 경작하지 않았다. 팔레스타인에 대흉년이 들자 야곱가족이 이집트로 이주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은 유랑하는 백성들이었기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히브리인의 조상 아브라함은 과연 당시 골칫거리 계층이었던 하비루였을까? 물론 히브리인의 조상은 아마르나 외교문서에 등장하는 하비루들과 완전한 일치를 주장할 수는 없으나 넓은 의미에서 하비루라는 계층에 속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히브리인 선조들에 관한 성서의 기록도 그들을 방랑객으로 묘사하고 있다. 따라서 정착해서 안정되게 살았던 이집트인이나 팔레스타인 원주민들의 눈에는 영락없이 하비루들로 보였을 것이다. 특히 이집트의 라암세스 2세(RamessesⅡ) 치하의 이집트에서 국가의 노예로 고용되었던 하비루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함되었다는 것은 확실하다는 것이 구약신학자들의 주장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조약이나 약속을 할 때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이란 표현이 “하비루의 신들”이라는 이름으로 협정이나 조약을 체결했던 하비루들과 너무나 흡사하다.
  따라서 이스라엘 선조들이 보여준 삶의 양식은 분명 당시 하비루들과 연관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소외되고 천대받던 하비루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을 선택하셨다. 그러므로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라고 노래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백은 정당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