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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리고의 기생 라합(3월 21일 설교)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10-03-21 22:14     조회 : 1594     추천 : 0     비추천 : 0    
여리고의 기생 라합

본문 : 여호수아 2 : 8-14
날짜 : 2010. 3. 21

  어느 교회에 새로 부임한 목사님이 교회학교 아이들의 성경실력이 궁금해서 한 아이를 불러서 물어보았습니다. “얘야, 여리고성을 누가 무너뜨렸니?” 그 아이는 정색을 하면서 “제가 안그랬어요. 저는 여리고성이 어디 있는 줄도 모르고 성 근처에 가지도 않았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어이가 없었던 목사님은 그 아이의 교회학교 선생님을 찾아 물었습니다. “선생님이 지도하는 아이에게 여리고성을 누가 무너뜨렸느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절대 무너뜨리지 않았다고 하는데 어떻게 된 것입니까?” 선생님은 “목사님, 제가 그 아이를 잘 압니다. 그 아이는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정직한 아이입니다. 자기가 안했다면 안한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충격을 받은 목사님은 당회석상에서 아이의 말과 교사의 말을 하면서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물었습니다. 한참을 고민하던 중 한 장로님이 용기를 내서 “목사님, 교회에도 책임이 있으니 특별헌금해서 다시 쌓아 드립시다”라고 했습니다. 여리고성에 얽힌 우수운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여리고성에 관한 말씀입니다. 여호수아가 싯딤에서 여리고성의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 정탐꾼 두 사람을 파견했습니다. 여리고에 잠입한 두 정탐꾼은 기생인 라합의 집에 들어갔습니다. 여리고성의 정보원들이 낌새를 알고 라합의 집을 덮쳤지만, 라합의 지혜로 무사했습니다. 정보원들이 간 후 라합은 정탐꾼들에게 나중에 이스라엘이 여리고성을 정복할 때, 나와 우리 가족을 보호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정탐꾼들도 그렇게 하기로 약속했습니다.
  라합은 아모리 족속의 기생입니다. 기생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매우 천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라합은 후에 정탐꾼 중 한 명으로 추정되는 유다지파 살몬과 결혼했습니다. 살몬은 다윗의 고조 할아버지이자 보아스의 아버지입니다. 보아스는 다윗의 증조 할아버지이고, 그의 아내가 저 유명한 모압 여인 룻입니다.
  라합은 안 좋은 것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이방여인이고 기생입니다. 유대인들이 증오하는 여인입니다. 그런 여인이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고, 예수님의 족보에도 올랐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이유는 그의 믿음입니다. 비록 기생이었지만 우리는 라합에게서 신앙이 무엇인지를 배워야 합니다. 그럴 때 라합이 받았던 축복을 우리도 받을 줄 믿습니다.

  첫째로, 라합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라합이 살았던 여리고성은 굉장히 견고합니다. 고고학자들에 따르면, 여리고는 세계 최초의 도시이고, 견고한 여리고성은 기원전 8천년 경에 건축되었다고 합니다. 당시로는 그 견고함이 상상을 초월했다고 합니다. 가나안의 수많은 도성 가운데 가장 크고 견고해서 정복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정도의 성을 가지고 있으면 어지간한 강대국이 전쟁을 걸어와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구약의 오바댜서는 교만했던 에돔의 멸망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에돔은 천연의 요새에 살았기 때문에 교만했습니다. 지금의 요르단에 가면 페트라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들은 여기서 90도 각도의 높은 바위틈에 굴을 파서 살았습니다. 구약시대 바벨론이나 이집트 제국들도 에돔을 정복하지 못했습니다. 바벨론이 이스라엘을 점령할 때 에돔땅을 통과하면서도 워낙 견고해서 정복을 못했습니다. 
  여리고성도 에돔족의 페트라와 같지는 않지만, 견고합니다. 군사훈련도 받지 않았고, 무기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이스라엘이 정복하기는 불가능한 곳입니다. 그런데도 라합은 장차 이스라엘이 여리고성을 점령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힘으로는 불가능하지만,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여리고성도 쉽게 정복할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정탐꾼들을 목숨 걸고 자기 집에 숨겼습니다.
  본문 9절에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고 합니다. 라합은 이스라엘을 믿은 것이 아니라 그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여리고성이 멸망당할 때 라합과 그의 가족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멸망의 시대에도 라합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산다는 메시지입니다.
  자공이 스승인 공자에게 “국가를 부강하게 하는 요소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공자는 “병과 식과 신이라”고 했습니다. 국방과 경제와 믿음이라는 말입니다. 자공이 공자에게 “그 중에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무엇을 버립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병을 버리라고 했습니다. 자공이 “다시 하나를 버린다면 무엇입니까”라고 하자, 식을 버리라고 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믿음입니다.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믿음을 버려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믿음을 버린다면 희망이 없다는 뜻입니다.
  여러분들에게 권력과 재물과 믿음이 있습니다. 하나를 버린다면, 무엇을 버리겠습니까? 믿음을 가장 먼저 버리지는 않습니까? 믿음을 버리면 우선은 좋을지 모르지만, 결코 성공하는 인생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에서 떨어져 나가는 불행입니다. 요한복음 15장의 말씀처럼, 포도나무 가지가 원나무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 순간 죽음이고 열매가 없습니다. 우리는 마지막까지 목숨 걸고 지켜야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임금의 부름을 받고 혼자 가기가 겁이 나서 평소 가장 친했던 세 친구에게 같이 가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첫째 친구는 당장 거절하였고, 둘째 친구는 같이 가다가 궁궐이 보이자 겁이 나서 더 가지 못했습니다. 셋째 친구는 왕 앞에까지 함께 가주었습니다.
  세 친구가 누구입니까? 첫째 친구는 돈입니다. 평소에는 그렇게 좋아하고 가깝지만 하나님이 부르시는 순간, 아무 소용도 없습니다. 둘째 친구는 일가 가족입니다. 가족은 일생을 같이 가고 마지막 문 앞까지 같이 갈 수 있지만 천국의 문을 지나가지는 못합니다. 셋째 친구는 믿음입니다. 믿음은 우리 일생 동안 같이 가고 죽음에도 같이 가고 하나님 보좌 앞에까지 같이 가서 우리를 보호해 줍니다.
  오늘날 성도들은 믿음을 쉽게 버립니다.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믿음을 버립니다. 재물을 모으기 위해서 믿음을 버립니다. 출세를 위해서, 개인의 취미생활을 위해서 믿음을 버립니다. 마음이 상한다고 믿음을 버립니다. 믿음은 형편에 따라 쉽게 버릴 만큼 무가치한 것이 아닙니다. 필요에 따라 뗏다 붙였다하는 악세사리도 아닙니다. 믿음이 나를 구원하기에 최고의 가치이고 축복입니다. 믿음의 가치를 알고 목숨 걸고 마지막까지 지키는 성도들이 지혜롭고 복을 받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나. 나는 왜 이렇게 기쁨이 없나. 나는 안되는가 보다”라고 한탄하지 마시고 믿음생활 제대로 하십시오. 라합처럼 생명을 걸고 믿음생활 해 보십시오. 그러면 라합이 받았던 복을 여러분들도 받을 줄 믿습니다.

  둘째로, 라합은 하나님의 사람을 존중히 여겼습니다.

  여리고의 정탐꾼 두 사람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명을 띤 사람입니다. 이스라엘과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는 소중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라합은 그들의 생명을 보호해 주었습니다. 라합은 하나님의 사람을 존중히 여겼기에 복을 받았습니다.
  요한일서를 보면, 교회 안에 디오드레베와 데메드리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디오드레베는 으뜸 되기를 좋아하고 교만합니다. 다른 사람이 교회 충성하면 험담하고 상처를 주어서 내쫓아 버립니다. 하나님의 일꾼들을 멸시하고 우습게 여겼습니다. 반면, 데메드리오는 겸손하면서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교회 일꾼들을 존중히 여기고 사랑했습니다. 사도요한은 디오드레베를 멀리하고 데메드리오를 존경하고 본 받으라고 했습니다. 성장하는 교회는 교회 일꾼들을 소중히 여깁니다. 복을 받는 교인들도 교회의 일꾼들을 소중히 여기고 존중하는 사람입니다.   
  빌립보서 2장을 보면, 바울이 에바브로디도를 가리켜 나의 동역자이고 위험과 환란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사명을 충성되게 감당한다고 했습니다. 교회를 위해서 헌신하고 봉사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에바브로디도를 알아주고 존귀히 여기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성도들을 사랑하고 존경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교회에도 존중히 여겨야 하는 소중한 일꾼들이 많습니다. 토요일마다 교회청소하는 귀한 분들, 바쁜 가운데서도 교회 구석구석을 수리하고 공사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주일마다 교사로, 찬양대와 중창단으로, 방송실에서, 주방에서 수고하는 많은 분들이 있습니다.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는 귀한 손길들이 있습니다.
  이 분들은 월급 받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돈을 써가면서 봉사합니다. 교회가 이분들에게 지불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분들의 수고와 봉사가 있기 때문에 교회가 존재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갑니다. 참으로 존귀한 분들입니다. 이런 존귀한 분들을 사랑하고 위로하며 격려해야 합니다.
  삼성 그룹의 임원들은 절대로 한 비행기를 타지 않는다고 합니다. 혹시 항공기 사고로 한꺼번에 인재를 다 잃을까봐 그렇습니다. 인재를 소중히 여기고 관리하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세계적인 회사로 성장한 것입니다. 교회도 일꾼을 소중히 여기는 교회는 부흥하지만, 무시하고 무관심한 교회는 성장할 수 없습니다.
  라합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을 존귀히 여기고 보호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교회 일꾼들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고 존경합시다. 그럴 때 우리 교회가 성장하고 우리 모두가 복을 받을 줄 믿습니다.

  셋째로, 라합은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본문 9절에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는다”고 합니다. 모두들 두려워 벌벌 떤다는 말입니다. 10절에는 “이스라엘이 그동안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우리가 다 들어서 안다”고 합니다. 여리고 사람들 모두가 다 안다는 뜻입니다. 11절에는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다”고 합니다. 이미 이스라엘의 소문을 듣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심도 알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라합을 제외하고는 구원 받기 위해서 실천에 옮기는 사람이 없습니다. 당장의 목숨이 위태롭기 때문입니다. 라합은 정탐꾼을 숨기다가 걸리면 죽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믿고 실천에 옮겼습니다.
  야고보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행함이 있어야 참 믿음이라는 뜻입니다. 믿음대로 실천할 때 능력있는 신앙인이 되고 복을 받습니다.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만나 영생 얻는 길을 알았지만, 실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실패했습니다. 믿음은 성경을 아는 것이 아니라, 성경대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믿음대로 행할 때, 참 믿음입니다. 행하지 않으면 믿음이 아닙니다. 봉사해야 된다고 믿으면 봉사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드려야 된다는 것을 알았다면 드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주일성수해야 됨을 알았다면 주일성수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모든 성도들을 사랑해야 됨을 알았다면 사랑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머뭇머뭇하지 말고 결단하고 순종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엘리야와 바알선지자들이 대결했던 갈멜산에는 머뭇머뭇하는 백성들이 많았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에는 차갑지도 않고 더웁지도 않는 미지근한 교회였습니다. 하나님은 역겨워서 토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행하지 않는 믿음을 역겨워 하십니다. 라합은 이스라엘을 보고 하나님의 능력과 존재를 알고 목숨 걸고 실천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의 믿음이 자신과 가족을 멸망에서 구원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알고 깨달았다면 결단하고 실천하십시오. 힘들어도 실천하십시오. 실천하는 것이 참 믿음이고 복 받는 믿음입니다. 여러분은 알고 깨달았으면서도 여러 가지 이유로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머뭇머뭇 하고 망설이고 있지는 않습니까? 미루지 마시고 바로 지금 라합처럼 실천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