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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럴 때 어떻게 하십니까?(6월 7일 설교)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09-06-07 14:11     조회 : 1073     추천 : 0     비추천 : 0    
이럴 때 어떻게 하십니까?

본문 : 시편 102 : 1-22
날짜 : 2009. 6. 7

  지난 주간에 용천노회 목사-장로 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저녁식사 후에 사람들이 여기저기 무리지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저도 동기 목사님들과 대화를 했습니다. 그런데 제 옆에서 한 목사님이 갑자기 “권오선 그 인간이 목사야. 그건 목사가 아니고 사이비야. 당장 목사면직 시켜야 된다”며 흥분했습니다. 제가 깜짝 놀라서 “아니 목사님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목사님이 “아니 권목사님이 아니고 한국교회협의회 총무 권오성 목사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웃으면서 “목사님, 그 분은 권오선이 아니고 권오성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권오성목사님이 뭘 그렇게 잘못했습니까?”라고 재차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권오성목사님이 노무현 전대통령의 장례식에 개신교 대표로 기도하면서 “하나님, 고노무현 대통령님을 천국에서 영원한 평화와 안식을 누리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집안은 대대로 불교집안이고, 노대통령의 유해도 정토원이라는 사찰에 둔다는 것은 대한민국이 다 아는데 그렇게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잘 믿어지지 않아서 집에 와 인터넷을 검색해서 기도전문을 보았습니다. 정말 들은 그대로였습니다. 옛날 육영수여사의 장례식에는 한경직목사님이 기도하셨고, 박정희대통령 장례식에는 새문안교회 강신명목사님께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분들은 고인이 예수를 믿지 않아서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고인의 기도는 하지 않고, 유족들이 예수 믿고 구원받게 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올바른 기도입니다. 예수 믿지 않아서 천국 못 간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기도했다는 것은 잘못입니다.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사람들에게 보이고 자랑하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을 크게 책망하셨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과 신앙에 근거해서 기도해야 응답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기도는 하나님의 진노를 삽니다. 구약 호세아서를 보면, 하나님께서 어떤 날은 우상인 바알제단에 가서 섬기고, 어떤 날은 하나님께 와서 제사드리며 기도하는 백성들을 향해 “다 집어치워라. 역겹다”고 분노하셨습니다. 올바른 믿음으로 기도해야 하나님의 응답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인 시편 102편 표제에는 “고난 당한 자가 마음이 상하여 그의 근심을 여호와 앞에 토로하는 기도”라고 적혀 있습니다. 102편의 저자가 누구인지는 잘 모르지만, 그의 고백으로 보아서 고난과 괴로움이 많고 근심과 걱정도 많은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본문 1,2절을 읽겠습니다.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나의 부르짖음을 주께 상달하게 하소서 나의 괴로운 날에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 주의 귀를 내게 기울이사 내가 부르짖는 날에 내게 응답하소서”. 시인은 “주님, 내가 몹시 괴롭습니다. 나를 외면하지 마시고 기도를 들어주세요. 모든 괴로움과 근심이 사라지고 평안을 주세요. 나를 괴롭히는 문제들을 해결해 주세요”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면 시인은 지금 어떤 형편입니까? 3절을 보면, “내 뼈가 숯같이 탔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속이 많이 상하고 괴로우면 “내 속이 숯같이 시커멓게 탔다”고 합니다. 4절에서는 음식을 먹는 것도 잊었다고 합니다. 너무 큰 일을 당해서 음식 먹는 것도 잊었다는 뜻입니다. 5절에는 “나의 탄식으로 나의 살이 뼈에 붙었다”고 합니다. “피골이 상접하다”는 뜻입니다. 먹지 못해서 말랐다는 표현입니다.
  7절을 보면 “내가 밤을 지새우니 지붕 위의 외로운 참새 같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잠을 잘 자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누가 잠을 못 잔다고 하면 “이상하다. 왜 잠을 못잘까” 궁금해 할 정도로 잠을 잘 잡니다. 그런데 언젠가 너무 힘든 일이 있어서 딱 한번 밤새도록 잠을 못 자고 가슴이 벌렁벌렁 할 때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충격으로 가슴이 벌렁벌렁한다고 하면 그 말이 이해가 안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은 저도 가슴이 벌렁벌렁 거리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이제는 잠을 못자는 고통도 가슴이 벌렁거리는 말도 이해가 갑니다.
  9절에는 “나는 눈물 섞인 물을 마신다”고 합니다. 독일의 작가 괴테는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물론 이 말은 인생의 큰 고통은 성숙과 발전을 가져온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눈물 젖은 빵을 먹고 본문처럼 눈물 섞인 물을 마시는 순간에는 큰 괴로움과 고통이 있습니다. 본문의 시인이 참 힘든 인생을 살았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시인과 같은 경험을 하신 적은 없으십니까? 속이 숯같이 검게 타고, 음식 먹을 힘도 없고, 먹지 않아도 배고픔을 모르는 경험은 없으셨습니까? 피골이 상접하고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해서 뒤척이며 꼬박 새신 적은 없습니까? 아마 제가 잘 모르긴 하지만 대게 이런 경험을 해보셨을 것입니다. 어쩌면 예배드리시는 여러분이 지금 겪고 있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럴 때 어떻게 하셨습니까? 지금 이런 일이 있으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것은 신앙인에게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 일을 당했을 때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당사자인 시인은 하나님께 “내가 너무 괴롭습니다. 나에게 평안을 주십시오”라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기도가 정답입니다. 괴롭고 힘들 때 마음이 상하고 아플 때, 기도하셔야 합니다. “맘에 분노 가득할 때 기도했나요. 주가 함께 당하시면 능히 이기리. 기도는 우리의 안식 빛으로 인도하니 앞이 캄캄할 때 기도 잊지 마세요”.
  우리 삶의 모든 고통과 문제해결은 기도입니다. 기도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교인들이 가끔 목사에게 집사님 권사님들께 기도를 부탁합니다. 참 좋은 모습입니다. 그런데 자신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왜 안하십니까라고 물으면 “피곤하고 바빠서요. 일어날 수가 없어요”라고 합니다. 중보기도는 참 중요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 자신이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중보기도는 옆에서 도우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본인은 기도부탁만 해놓고 자신은 하지 않는다면, 기도의 능력이 떨어집니다. 하나님이 뭐가 급해서 들어주시겠습니까?
  예수님이 변화산에 세 제자를 데리고 올라가셨습니다. 산 아래는 나머지 9명의 제자들이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귀신 들린 아들을 데리고 와서 고쳐 달라고 했습니다. 9명의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려고 애를 썼지만 실패하고, 예수님이 내려오셔서 고치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왜 우리는 안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기도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그 전에 두 명씩 나가서도 병도 고치고 귀신도 쫓아냈습니다. 지금보다 훨씬 큰일도 했습니다. 그래서 요것쯤이야 무시하고 기도하지 않았다가 실패한 것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까? 그 이유를 보십시다. 13절에서는 하나님은 긍휼과 은혜를 베푸십니다. 17절에는 여호와는 빈궁한 자의 기도를 돌아보시며 그들의 기도를 멸시하지 않습니다. 19절에는 하늘에서 항상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20절에서는 갇힌 자의 탄식을 들으십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보고 계시며, 우리에게 은혜와 긍휼을 베푸시고, 빈궁한 우리의 기도를 멸시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괴로움으로 탄식할 때도 들으시고 평화를 주십니다. 얼마나 좋으신 하나님이십니까?
  노무현 전대통령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많은 종교인들이 참석해서 애도했고, 특히 불교를 중심으로 극락왕생을 위해 빌었습니다. 극락이라는 곳은 느끼지도 못하고 알지는 못하는 그야말로 “무”의 세계입니다. 그런데 왜 거기 갈려고 합니까? 우리는 알고 느끼고 평화와 행복이 있는 천국에 가야 합니다.
  기독교인들과 불신자들은 장례식에서 부르는 노래가 다릅니다. 불신자들은 “이제가면 언제오나”고 합니다. 기진해서 죽었는데, 그 몸으로 다시 오면 어떻게 합니까? 본인도 힘들고 가족들도 힘이 듭니다. 기독교인들은 “몇 일후 몇 일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라고 찬송합니다. 고인에게 오라고 하지 않고, 내가 곧 갈테니 조금 후에 천국에서 만나자고 합니다. 불신자들은 고인에게 오라하고, 기독교인들은 고인에게 내가 곧 갈테니 먼저 가서 기다리라고 합니다. 이것이 천국과 지옥의 차이입니다.
  지옥은 고통이 크기 때문에 빨리 돌아오라고 합니다. 기독교인들은 천국이 너무 좋은 곳이기에 오지 말고 거기서 기다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안식처인 천국을 우리 위해 예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에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의 집을 마련하고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 가겠다”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좋으신 하나님이십니까? 그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십시오. 어디 다른 곳에 해결하려고 하지 마시고 교회 오셔서 기도하십시오. 좋으신 하나님께서 다 해결해 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시온”이라는 말이 6번 나옵니다. 시온은 교회입니다. 교회와서 기도하라는 메시지입니다. 1999년 최병철이라는 분이 “공자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책을 냈습니다. 그러자 2005년에는 상명대 김경일 교수가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을 출판했습니다. 미안하지만, 나라가 살고 죽는 것은 공자에게 달린 것이 아니고 예수를 믿느냐 안믿느냐에 달려 있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 예수님 외에는 다 죽어야 나라가 삽니다. 바울은 “나는 예수 위해 날마다 죽는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날마다 죽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살고 가정이 살고 교회가 살고 나라가 삽니다. 당연히 다른 종교들도 다 죽어야 합니다. 오직 주 예수님이 우리 민족의 마음과 삶 속에 살아 역사하실 때, 희망이 있고 축복이 있습니다.
  본문 17절을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빈궁한 자의 기도를 돌아보시며 그들의 기도를 멸시하지 아니하셨도다”. 시인의 기도를 들으셨습니까? 아니면 들으실 것이라고 하십니까? “기도를 멸시하지 아니하셨도다”라고 합니다. 과거완료형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응답하셨다는 뜻입니다. 시인은 삶의 곤경에 처했을 때 하나님께 기도해서 응답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축복을 누렸습니다. 오늘 말씀은 어떤 일이 있어도 기도해야 함을 말씀합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으실 줄 믿습니다.
  한신대학교 총장을 역임했던 오영석 목사님이 학생시절에 공부는 하고 싶은데 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하나님께 공부할 수 있도록 학비를 좀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던 어느 날 하나님께 편지를 썼습니다. “하나님 전상서, 하나님 공부하고 싶습니다. 학비를 좀 주세요. 주실 줄 믿습니다”. 이 편지를 봉투에 넣고 풀로 봉인했습니다. 편지 봉투에 “천국에 계신 하나님 앞”, 그리고 자기 주소와 이름을 쓰고 우체통에 넣었습니다. 우체부 아저씨가 희한한 주소를 보고 고민하다가 근처 큰 교회에 갖다 주었습니다. 편지를 뜯어 본 목사님은 당회를 소집했습니다. 당회원들은 기도한 편지라며, 유학까지 시켰습니다. 그래서 목사가 되고 한신대 총장까지 하셨습니다. 기도하는 곳에 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랑하는 예안가족 여러분!
  열왕기하 19장에 보면, 앗시리아 군대가 이스라엘을 침략해서 하나 하나 정복해 가고 드디어 예루살렘까지 진격해 왔습니다. 이때 히스기야 왕이 어떻게 한 줄 아십니까? 당연히 참모들을 소집해서 전략을 짜고 장수들에게 전쟁 명령을 내려야 합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성전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사람들이 볼 때는 미친 짓입니다. 나라를 망하게 하려고 작정했다는 비난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밤새도록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앗시리아 군대를 물리쳐 주시고 이스라엘을 이기게 하셨습니다. 어떤 위급한 경우에도 먼저 기도해야 한다는 메시지입니다.
  속이 숯처럼 검게 탔습니까?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근심과 식욕이 없습니까? 괴로워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날마다 눈물 섞인 밥과 물을 마시고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앞이 캄캄하십니까? 이럴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십니까? 시인은 하나님께 기도해서 응답받았습니다. 여러분들도 늘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시인의 기도를 들으셨던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도 들어 주실 줄 믿습니다.